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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태령고개 지명 유래와 융릉 건릉 이야기

펙트콜 2018. 12. 28. 21:32

남태령 고개는 서울시 관악구 남현동에서 경기도 과천시로 넘어가는 해발고도 183m의 고개로 우면산과 관악산 사이에 있습니다.


남태령이라는 지명 유래는 효심이 지극하기로 소문난 조선의 제22대 임금 정조대왕의 이야기에서 시작되었다고 합니다.


정조대왕의 아버지인 사도세자(장헌세자)는 뒤주에 갇혀 비극적으로 죽음을 맞이하였습니다.


이후 정조가 임금으로 즉위하였고 아버지 사도세자를 추존하면서 시호를 올리고 묘소를 현륭원(융릉)으로 바꾸고 정조 13년인 1789년에 수원으로 옮겼습니다.

 

그리고 융릉을 참배하러 가는 길에 이곳 고개를 넘어가게 되었는데 과천현에 있는 이방에게 이 고개의 이름을 물었다고 합니다.



그러자 과천현의 이방은 정조대왕에게 "남태령"이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이 고개의 이름을 알았던 신하가 "이 고개의 이름은 "여우고개"라고 불리는데 왜 임금에게 거짓을 고하느냐"며 질책했습니다.


그러자 이방은 "여우고개라고 하지만 그런 요망스러운 말을 차마 드리지 못해 첫 번째 큰 고개라는 뜻으로 <남태령>이라고 아뢰었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이러한 이야기를 가상히 여긴 정조대왕은 과천현의 이방을 칭찬하였고 이후 이곳을 <남태령>이라고 부르게 되었다고 합니다.



과거 이 고개는 수목이 울창하고 산세가 험해 사람이 많이 다니지 않았고 또한 이곳에 사람의 모습을 한 천년 묵은 여우가 자주 나타났다는 이야기가 있어 "여우고개"라고 불렸다고 합니다.



 


이곳 남태령고개를 지나서 현륭원(융릉)으로 가기 위해서는 수원시로 진입하는 고개를 또 넘어야 되는데 그곳의 지명 유래도 정조대왕과 관련이 있습니다.


"지지대고개"라고 불리는 이곳은 고개 정상에서 능이 보이지만 도착하는 시간까지 너무 더디게 느껴진다고 했습니다.


또한 서울로 돌아갈 때는 이곳 고개를 지나면 더 이상은 현륭원이 보이지 않아 슬퍼하며 한참을 머무르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 때문에 정조대왕의 행차가 이곳 고개만 오면 한참을 지체하게 되어 "느리다 지"를 두 번 반복해 "지지대고개"라고 불리게 되었다고 합니다. 


정조대왕도 49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나자 아버지의 능의 근처에 묻히겠다는 유언대로 현륭원 동쪽에 초장 하였는데 효의왕후가 1821년에 죽자 현륭원 서쪽으로 이장하여 합장하였습니다.(건릉:健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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